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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시 ] 10월 및 추석 관련 시 모음

토털 컨설턴트 2017. 9. 22.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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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및 추석 관련 시 모음

 

추석

추석이 임박해 오나이다
어머니 !
그윽한 저----
비밀의 나라에서
걸어오시는 어머니의
고운 발자국소리
멀리서 어렴풋이
들리는 듯 하오이다.


(
오상순·시인)


한가위
                              
미루나무 가지 끝에
초승달 하나
걸어 놓고

열사흘
시름시름
밤을 앓던
기다림을

올올이
풀어 내리어
등을 켜는 보름달


(
공재동·시인)


추석 전날 달밤에 송편 빚을 때 

추석 전날 달밤에 마루에 앉아 
온 식구가 모여서 송편 빚을 때 
그 속에 푸른 풋콩 말아넣으면 
휘영청 달빛은 더 밝아 오고 
뒷산에서 노루들이 좋아 울었네

"
저 달빛엔 꽃가지도 휘이겠구나!" 
달 보시고 어머니가 한마디하면 
대수풀에 올빼미도 덩달아 웃고 
달님도 소리내어 깔깔거렸네
달님도 소리내어 깔깔거렸네.


(
서정주·시인)


송편 

보송보송한 쌀가루로 
하얀 달을 빚는다
한가위 보름달을 빚는다

풍년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하늘신께 땅신께 
고수레 
고수레하고 

햇솔잎에 자르르 쪄낸 
달을 먹는다

쫄깃쫄깃한 
하얀 
보름달을 먹는다


(
최병엽·시인)


추석 날 아침에

고향의 인정이
밤나무의 추억처럼
익어갑니다

어머님은
송편을 빚고
가을을 그릇에 담아
이웃과 동네에
꽃잎으로 돌리셨지

대추보다 붉은
감나무잎이
어머니의
추억처럼
허공에
지고 있다


(
황금찬·시인)




할아버지 산소 가는 길
밤나무 밑에는
알밤도 송이밤도
소도록이 떨어져 있다

밤송이를 까면
밤 하나하나에도
다 앉음앉음이 있어
쭉정밤 회오리밤 쌍동밤
생애의 모습 저마다 또렷하다

한가위 보름달을
손전등 삼아
하느님도
내 생애의 껍질을 까고 있다


(
오탁번·시인)


한가위

어머니
오늘은 
당신의 치마폭에서 
달이 뜨는 날입니다 

아스라한 황톳길을 돌아 
대 바람에 실려온 
길 잃은 별들도 
툇마루에 부서지는 
그런 날입니다 

밀랍처럼 곱기만 한 햇살과 
저렇듯 해산달이 부푼 것도 
당신이 살점 떼어 내건 
등불인 까닭입니다 

새벽이슬 따 담은 
정한수 한 사발로도 
차례 상은 그저 
경건한 풍요로움입니다 

돌탑을 쌓듯 
깊게 패인 이랑마다 
일흔 해 서리꽃 피워내신 
신앙 같은 어머니


(
최광림·시인)


추석 지나 저녁때 
   
남의 집 추녀 밑에 
주저앉아 생각는다 
날 저물 때까지 

그때는 할머니가 옆에 
계셨는데 
어머니도 계셨는데 
어머니래도 젊고 이쁜 
어머니가 계셨는데 

그때는 내가 바라보는 
흰 구름은 눈부셨는데 
풀잎에 부서지는 바람은 
속살이 파랗게 
떨리기도 했는데 

사람 많이 다니지 않는 
골목길에 주저앉아 생각는다 
달 떠 올 때까지


(
나태주·시인)


달빛기도 - 한가위에

너도 나도 
집을 향한 그리움으로 
둥근 달이 되는 한가위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이 
달빛처럼 순하고 부드럽기를 
우리의 삶이 
욕심의 어둠을 걷어내 
좀더 환해지기를 
모난 미움과 편견을 버리고 
좀더 둥글어지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려니 

하늘보다 내 마음에 
고운 달이 먼저 뜹니다 
한가위 달을 마음에 걸어두고 
당신도 내내 행복하세요, 둥글게


(
이해인·수녀)


추석 달을 보며 
  
그대 안에는 
아무래도 옛날 우리 어머니가 
장독대에 떠놓았던 정한수 속의 
그 맑은 신이 살고 있나 보다

지난 여름 모진 홍수와 
지난 봄의 온갖 가시덤불 속에서도 
솔 향내 푸르게 배인 송편으로 
떠올랐구나

사발마다 가득히 채운 향기 
손바닥이 닳도록 
빌고 또 빌던 말씀 

참으로 옥양목같이 희고 맑은 
우리들의 살결로 살아났구나
모든 산맥이 조용히 힘줄을 세우는 
오늘은 한가윗날

헤어져 그리운 얼굴들 곁으로 
가을처럼 곱게 다가서고 싶다

가혹한 짐승의 소리로 
녹슨 양철처럼 구겨 버린 
북쪽의 달, 남쪽의 달 
이제는 제발 
크고 둥근 하나로 띄워 놓고 

나의 추석 달은 
백동전 같이 눈부신 이마를 번쩍이며 
밤 깊도록 그리운 얘기를 나누고 싶다.


(
문정희·시인)

고유의 명절 한가위  

동심의 그리운 시절
철없이 명절 되면
새옷 사 주지 않을까
냉가슴 앓던 그리움
새록새록
피어나는 까닭은
세월 흐른 탓이겠지

디딤 방앗간 분주하고
불린 쌀 소쿠리에 담아
아낙 머리 위에 얹고
동네방네 시끌벅적 
잔치 분위기 된 추석명절이었다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산과 들녘의 풍경
땀 흘린 보람 
누렇게 익어가는 곡식
장작불 지피고
솥뚜껑 위 지짐 부치는 냄새
채반 위 가지런히 장식해 낸다


(
전영애·시인)


팔월 한가위

길가에 풀어놓은
코스모스 반가이 영접하고
황금물결 일렁이는
가을의 들녘을 바라보며
그리움과 설레임이
밀물처럼 달려오는
시간이었으면 합니다

한동안 뜸했던
친구와 친지, 친척 만나보고
모두가 어우러져
까르르 웃음 짓는 희망과 기쁨이
깃발처럼 펄럭이는
그런 날이었으면 합니다

꽉 찬 보름달처럼 풍성하고
넉넉한 인심과 인정이 샘솟아
고향길이 아무리 멀고 힘들지라도
슬며시 옛 추억과 동심을 불러내어
아름다운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 수 있는 의미 있고 소중한
팔월 한가위이었으면 합니다


(
반기룡·시인)


산골 이발소

팔십 년 묵은 감나무 아래
통나무 의자를 놓고
머리를 깎습니다.

이빨 빠진 기계가 지나간 뒤
더벅머리 깎이는 아이들의 머리는
뒷산에 떨어지는 알밤처럼
여물었습니다.

껄밤송이 같은 아이들이
주머니엔 알밤이 가득
땡감을 깨물면서 머리 깎으러
모여옵니다.
달은 매일 밤 통통 여물어 가고
내일은 추석.

감은 햇볕에 데어 붉었습니다.
밤은 기쁨에 겨워
가슴을 헤치고 여물었습니다.
노란 감나무잎 날리는 바람은
시원해 좋은데,
들지 않는 기계를 놀리느라고
아저씨 이마는 땀방울이
송알송알 열립니다.

깎은 아이 웃고,
깎는 아이 눈물 짜고,
내일은 추석.
오랜만에 부산한 산골 이발소엔
여무는 가을 하늘이
한아름 다가옵니다.


(
이범노·시인)


도시의 추석 

여기서 30년 살았으니 
이제 여기가 고향이제
하던 김씨도 
고향 찾아 떠났다 

집 팔고 논 팔고 
광 속의 종자씨까지 모조리 훑어왔다던 
이씨도 
홀린 듯 훌훌 나섰다 

다 떠나버려 
졸지에 유령의 城이 된 도시 

그간 
욕심이 너무 컸던 거야
너무 메마르게 대했어
사치심과 이기심만 가르친 꼴이지... 

회한이 번지는 
회색 지붕 위엔 
달마저 
어느 놈이 챙겨 가버리고 없다


(
정소슬·시인)

 

10월의 당신에게 띄우는 편지 

가을밤 청청한 소나무를 타고 
우물 속으로 떨어진 달이 처연히도 빛나노라 
긴 두레박을 내려 그 모습 길어올리면 
나뭇가지에 걸려버리는 내 하얀 목선 


묵언의 몸짓으로 혼자 감당해야 할 
아침까지의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았는데 
겨울로 가는 달빛의 슬픔이 한층 차가워지는 만큼 
그만큼의 긴 고뇌를 10월의 달과 함께 견뎌내고 싶은 것일까 
우물가에 기대어 달과 나의 시차를 극복하고 
이슬 한 방울로 만나고 싶은 꿈의 안부를 묻는 중이다 


매일 매일 신이 내게 던진 주문을 읽으며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지만 
기적을 바라지 않기에 
애당초 기적 같은 건 없는 거라고 
오래 비워둔 내 방의 꽃병에 
푸른 달빛을 채우며 꽃을 꽂는다. 그리고 
역사는 내 안에서 이루어질 뿐이라고 혼자 중얼거리지 


하늘의 달이 지상의 달이 될 때 
나의 고백은 서늘해질 수밖에 없지만 
나뭇가지에 걸려버린 내 하얀 목선 같은 달빛이여
내일이 가는 길과 그 길의 바람의 온도를 묻고 싶을 뿐이다

( 이채 시인 )

    

시월 

하늘에서 걸려오는 전화벨소리 
떼각떼각 복도를 걸어오는 발자국소리 
사무실이 바닥보다 창문 높이로 올라서고 
벽에서는 횟가루 대신 구름냄새가 난다
먼 구름에서 알밤이 빠지듯 
너는 그렇게 내 품에 떨어진다
너의 얼굴을 보면 보석을 머금고 있는 것이 
석류만이 아닌 것을 안다
너의 가슴을 보면 
사과나무 가지가 휘어진다
서류뭉치들이 연이 되어 나르고 
시계추 끝에선 포도송이가 여린다
시월은 하늘과 
하늘의 친척들이 몰려오는 달 
꿈과 기다림이 현금으로 거래되고 
온 도시가 잠깐 
하늘의 식민지가 되는 


(민용태·시인)

 

시월 비 

우수수 
지는 낙엽은 
나무의 한쪽 밑동에만 
쌓이고 

-
떨구는 빗방울은 
내 한쪽 가슴만 
적시운다


(정소슬·시인 )

 

10月 어느 날

10月 태양빛에
가득 찬 오늘
나 죽어도 좋으리

10月 비껴진 햇빛에
코스모스 흐느끼는 이 날
나 생을 마쳐도 좋으리

들국화 비에 젖는
10月 어느 날
나 본향으로 돌아가도 좋으리.


(홍경임·시인)

 

누가 쏘았을까, 10월 심장을    

누가 10월 심장을 쏘았기에  
첩첩 산마다 선혈 낭자할까 
골골 들녘마다 억새강이 흐를까
내 안 뜨겁게 달구던 피도 흘러나가  
가슴 저며 시려 오는 걸까


(원영래·시인

 

10

혹시 
다 마셔버렸나요 
빈 잔을 앞에 두고 
후회하고 있나요 
옆구리가 시리고 
뼈마디가 아린가요 
  
차분히 지켜보세요 
저 깊은 하늘소()에서 
붉은 술이 방울져 내릴 겁니다 
다시 잔을 가득 채웁시다 
그리고 남은 날들을 위해 
건배합시다 


(임영준·시인 )

 

시월(十月
  
가을은 쓸쓸하나 
시월은 슬프잖고 

가을은 외로우나 
시월은 고독찮네 

루루루 
풍성한 시월 
노래하며 보낼래 


(오정방·시인 )

 

10

호박 눌러 앉았던, 따 낸
자리.

가을의 한복판이 움푹
꺼져 있다.

한동안 저렇게 아프겠다.


(문인수·시인)

 

시월 이야기   

만삭의 달이 
소나무 가지에서 내려와 
벽돌집 모퉁이를 돌아갑니다 

조금만 더 뒤로 젖혀지면 
계수나무를 낳을 것 같습니다 

계수나무는 이 가난한 달을 
엄마 삼기로 하였습니다 
무거운 배를 소나무 가지에 내려놓고 
모로 누운 달에게 
"
엄마
라고 불러봅니다 

달의 머리가 발뒤꿈치까지 젖혀지는 순간이 왔습니다 
아가야아가야 부르는 소리 
골목을 거슬러 오릅니다 

벽돌집 모퉁이가 대낮 같습니다


(
이향지·시인)


시월  

모든 
돌아가는 것들의 
눈물을 
감추기 위해 

산은 
너무 고운 
빛깔로 
덫을 내리고 

모든 
남아 있는 것들의 
발성(發聲)을 위해 

나는 
깊고 푸른 
허공에 
화살을 올리다.


(
임보·시인)


시월 

친구 만나고 
울 밖에 나오니 

가을이 맑다 
코스모스 

노란 포플러는 
파란 하늘에

 
(
피천득·수필가)

시월

파랗게 날 선 하늘에 
삶아 빨은 이부자리 홑청 
하얗게 펼쳐 널면 

허물 많은 내 어깨 
밤마다 덮어주던 온기가 
눈부시다 

다 비워진 저 넓은 가슴에 
얼룩진 마음도 
거울처럼 닦아보는 
시월


(
목필균·시인)


시월의 장미

고고하다
시월의 장미
시들어 버리지는 않겠다
기다렸다는 듯이
찬바람을 맞으며
똑똑 떨구어내는
선혈
붉음이 사라지고
장미꽃이 남는다
내 너를 위하여
담배를 피어주마
야윈 네 가시를 안아주마


(
나호열·시인, 1953-)


10
 

무언가 잃어간다는 것은
하나씩 성숙해 간다는 것이다
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때,
돌아보면 문득
나 홀로 남아 있다
그리움에 목마르던 봄날 저녁
분분히 지던 꽃잎은 얼마나 슬펐던가
욕정으로 타오르던 여름 한낮
화상 입은 잎새들은 또 얼마나 아팠던가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때,
이 지상에는
외로운 목숨 하나 걸려 있을 뿐이다
낙과落果여
네 마지막의 투신을 슬퍼하지 말라
마지막의 이별이란 이미 이별이 아닌 것
빛과 향이 어울린 또 한번의 만남인 것을
우리는 
하나의 아름다운 이별을 갖기 위해서
오늘도
잃어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
오세영·시인, 1942-)


10
월은 

시월은 
내 고향이다
문을 열면
황토빛 마당에서
도리깨질을 하시는 
어머니

하늘엔 
국화꽃 같은 구름
국화향 가득한 바람이 불고

시월은 
내 그리움이다
시린 햇살 닮은 모습으로 
먼 곳의 기차를 탄 얼굴
마음밭을 서성이다
생각의 갈피마다 안주하는

시월은 
언제나 행복을 꿈꾸는 
내 고향이다


(
박현자·시인, 경기도 양평 출생)


시월

투명해지려면 노랗게 타올라야 한다
은행나무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은행잎을 떨어뜨린다
중력이 툭, , 은행잎들을 따간다
노오랗게 물든 채 멈춘 바람이
가볍고 느린 추락에게 길을 내준다
아직도 푸른 것들은 그 속이 시린 시월
내 몸 안에서 무성했던 상처도 저렇게
노랗게 말랐으리, 뿌리의 반대켠으로
타올라, 타오름의 정점에서
중력에 졌으리라, 서슴없이 가벼워졌으나
결코 가볍지 않은 시월
노란 은행잎들이 색과 빛을 벗어던진다 
자욱하다, 보이지 않는 중력


(
이문재·시인, 1959-)


시월에

오이는 아주 늙고 토란잎은 매우 시들었다

산 밑에는 노란 감국화가 한 무더기 해죽, 해죽 웃는다 
웃음이 가시는 입가에 잔주름이 자글자글하다
꽃빛이 사그라들고 있다

들길을 걸어가며 한 팔이 뺨을 어루만지는 사이에도
다른 팔이 계속 위아래로 흔들리며 따라왔다는 걸 
문득 알았다

집에 와 물에 찬밥을 둘둘 말아 오물오물거리는데
눈구멍에서 눈물이 돌고 돌다

시월은 헐린 제비집 자리 같다
, 오늘은 시월처럼 집에 아무도 없다


(
문태준·시인, 1970-)


시월에 생각나는 사람

풋감 떨어진 자리에
바람이 머물면
가지 위, 고추잠자리 
댕강댕강 외줄타기 시작하고
햇살 앉은 벚나무 잎사귀
노을 빛으로 가을이 익어갈 때

그리운 사람,
그 이름조차도 차마 
소리내어 불러볼 수 없는
적막의 고요가 
차라리 다행일지도 모르지
오지 못할
그 사람 생각을 하면


(
최원정·시인)


음력 시월 

음력 시월을 이르는 말에 
소춘 小春
양월 良月
응종 應鐘
방동 方冬
상동 上冬
이렇듯 여러 말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갑자기 추웠다가 
다시 따뜻해지는 작은 봄에 
이렇듯 여러 이름이 있는 이유가 있을 터이어서요 
나는 내 아내의 모든 병이 낫고 
새로 찾아온 봄을 두고 
 
오래 오래 감격해하는 것입니다
(
김영천·시인, 1948-)


시월, 초사흘 

누가 던져놓았나, 길 없는 
하늘중천에 
막내고모 눈썹 같은 초승달 

달빛에 야윈 
미루나무 꼭대기에 서너 장 
봉함엽서 떨고있네

흰 눈발 서성이면 
덧나던 그리움도, 기우뚱 
헛발 딛는 초저녁 
(
류제희·시인)


시월 

, 고요하고 부드러운 시월의 아침이여,
너의 잎새들은 곱게 단풍이 들어 곧 떨어질 듯하구나
만일 내일의 바람이 매섭다면
너의 잎새는 모두 떨어지고 말겠지
까마귀들이 숲에서 울고
내일이면 무리 지어 날아가겠지
, 고요하고 부드러운 시월의 아침이여
오늘은 천천히 전개하여라
하루가 덜 짧아 보이도록 하라
속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의 마음을
마음껏 속여 보아라
새벽에 한 잎
정오에 한 잎씩 떨어뜨려라
한 잎은 이 나무, 한 잎은 저 나무에서
자욱한 안개로 해돋이를 늦추고
이 땅을 자줏빛으로 흘리게 하라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미 서리에 말라버린 
포도나무 잎새를 위해서라도
주렁주렁한 포도송이 상하지 않게
담을 따라 열린 포도송이를 위해서라도


(
로버트 프로스트·미국 시인, 1874-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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