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책

‘동네책방’ 예산 다 깎은 노벨문학상의 나라

토털 컨설턴트 2024. 10. 2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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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정부, 우수도서 보급·도서관 예산 줄삭감

“읽고 사유하는 문화, 정부가 앞장서긴커녕…”


“한강 소설 ‘채식주의자’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다. ‘1분에 10권’ 팔릴 정도다. 교보문고와 알라딘, 예스24에서 경이로운 판매 속도를 보이고 있다. (…) ‘한강 쏠림’은 어쩔 수 없지만 수상을 계기로 침체된 한국문학이 다시 살아나면 좋겠다.”

‘채식주의자’ 열풍이 불던 2016년 5월 뉴스 기사의 한 대목이다. 세계 3대 문학상인 맨부커상 수상 소식에 전 국민이 앞다퉈 책을 사들였다. 수상작 쏠림과 온라인 판매 쏠림을 우려하면서도 평론가들은 ‘한국문학이 살아나는 계기’가 되길 바랐다.

노벨문학상을 탄 2024년에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된다. 한강 작가 작품이 수상 엿새 만에 100만부 가까이 팔렸다고 한다. 대부분 온라인서점 몫이고 지역서점은 책을 못 구해 전전긍긍이다. 서점가를 뒤덮은 한강 마케팅이 다른 작품으로 확대될 기미도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반짝 유행을 넘어 한국문학 흥행을 만들자는 제안, 이번엔 가능할까.

온라인몰·대형서점만 ‘단비’

한강 열풍은 소규모 지역서점엔 그림의 떡이다. 교보문고 등 대형서점 기업이 온라인 판매 편의성과 15% 할인율을 내세워 대부분의 구매 수요를 흡수한 탓이다. 싸게 공급받고 싸게 파는 규모의 경제 탓이 크다. 온·오프라인서점의 기울어진 운동장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특정 도서 열풍 땐 그 격차가 더욱 도드라진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이 알려진 2024년 10월10일 이후 10월13일까지 교보문고는 31만 부, 알라딘은 22만 부를 판 것으로 집계된다. 그러나 지역서점은 많아야 150권 남짓, 적으면 2~3권 팔았다는 경우도 있다. 찾아오는 손님도 적거니와 지역서점에 들어가는 물량 자체가 적어서다. 출판사들은 “최대한 지역서점에도 물량을 배분하고 있다”는 입장이나, 지역서점 도매상 ‘웅진북센’에 들어온 한강 서적 물량(10월10일∼10월16일)은 3만 권에 불과하다. 주문량(15만권)의 5분의 1 수준이고, 이마저도 전국 서점이 나눠 가져야 한다.

10월16일 교보문고 온라인 일간 베스트 판매순위를 보면 상위 20권 중 15권이 한강 작가의 책이다. 나머지는 경제 트렌드 분석서와 유명 교수의 인류학서. 다른 작가들로 문학적 관심을 확장하기엔 아직 시장 쏠림이 심하다.

한강 작가도 면치 못한 ‘동네책방’ 적자

한강 작가도 대형서점 기업의 시장 장악력에 문제의식을 가졌다. 획일적 취향에 맞서 다양한 책을 선보이는 공간이 지역서점이라고 믿었다.

한강 작가는 웹진 ‘비유’ 2022년 7월호 인터뷰에서 직접 운영하는 서울 종로구 ‘책방오늘’이 “만성적으로 큰 폭의 적자”라면서도 “어떤 대가도 없이 좋다고 생각되는 책들을 잘 보이도록 매대와 서가에 진열해두면,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서점에서 선택하기 어려웠던 그 책들을 손님이 만나게 된다. 그 반가운 순간들이 서점을 운영하게 하는 가장 큰 힘”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윤석열 정부는 도서 관련 예산을 죄다 깎고 있다. 지역서점의 북토크 등을 지원하는 ‘지역서점 활성화 지원’ 예산은 2024년 전액(11억원) 삭감됐고 우수 도서를 보급하는 ‘문학나눔’과 ‘세종도서’ 예산은 통합돼 20억원 줄었다. 이동식 도서관 등 국민 책 읽기를 지원하는 ‘국민독서문화증진’ 사업은 58억원 전액을 없앴다.

‘읽는 사회’로 이행하지 않고서 노벨상만 흠뻑 즐기는 현상이 오래갈 수 있을까.

읽는 근육 없이 한국문학을 덥석 맞이했다가 도리어 튕겨져 나갈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읽는 근육’ 없이 덤비다가 책 내려놓을까 걱정

노벨상 수상작이 아닌 책도 두루 읽히는 사회. 그때에야 유행을 넘어선 전성기가 될 수 있다고 출판계는 본다.



[ 가을 서점가 ‘한강 가뭄’…단비같은 책은 25일 이후에나 ]

“한강 책 언제쯤 받을 수 있을까요?”

지난 14일 온라인 서점에서 한강 소설 ‘흰’을 주문한 김아무개씨는 여드레가 지난 22일까지도 아직 받지 못했다. 서점은 애초 17일 발송 예정이라고 했다가 18일, 21일, 23일로 세차례나 수정 공지했다. 전국 온오프라인 서점이 ‘한강 책 가뭄’을 겪고 있다. 출판사는 인쇄소를 총동원해 책을 인쇄하고 있지만, 완성까지 절대적 시간이 필요해 ‘해갈’은 25일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한강 책은 최단 기간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기록됐다. 지난 10일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 알려진 뒤 엿새 만에 교보문고·예스24·알라딘 주문이 100만부를 돌파했고, 21일 기준으로 23만부가 더 추가됐다. 하지만 이는 책 실물이 아닌 주문상의 ‘숫자’일 뿐이다. 출판사나 서점이 갖고 있던 재고 물량은 금세 소진됐고, 실제 책을 손에 쥔 독자들은 턱없이 못 미친다.

주문이 가장 많은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를 낸 창비 관계자는 22일 한겨레에 “대개 3개월에서 1년가량 소비될 재고를 보유하는데, 한강 책 재고 3천권이 몇시간 만에 동났다”고 당시 긴박한 상황을 전했다. 책을 최대한 빨리 제작하면 인쇄-제본-장정까지 보통 닷새가 걸리며, ‘채식주의자’는 양장본이라 이틀 더 추가된다. 인쇄소에선 11일 오전부터 인쇄에 들어가 주말도 없이 제작을 진행했는데도 ‘소년이 온다’는 14일, ‘채식주의자’는 15일에야 주문 수량 일부가 독자와 서점 쪽으로 전달됐다. ‘소년이 온다’는 이날까지 40만부, ‘채식주의자’는 20만부가 출고됐다. 창비 관계자는 “25일 이후에나 공급 부족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책 공급이 원활하지 않자, 전국 서점 도매 출고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교보문고와 지역 서점 운영자들 모임인 한국서점조합연합회(한서련) 사이에 마찰음이 일기도 했다. 한서련은 지난 17일 보도자료를 내어 “교보문고가 지역 서점에 후순위로 책을 공급해 ‘한강 특수’를 독점한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이에 교보문고는 22일 “14일부터 한강 책을 하루 평균 1만7000부 공급받았고, 그중 2900부를 지역 서점으로 보냈다”고 해명한 뒤 “22일부터 1만5000부를 지역 서점에 분배하고, 나머지 2천부를 교보문고 8개 서점(광화문, 강남, 잠실, 영등포, 분당, 대전, 대구, 부산)에 출고하겠다”고 밝혔다. 교보문고는 지역 서점과의 상생을 위해 이날부터 이달 말까지 나머지 26개 서점에서는 한강 책 판매를 중단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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