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시 ] 5월의 시 모음
오월이 돌아오면
오월이 돌아오면
내게서는 제법 식물 내음새가 난다
그대로 흙에다 내버리면
푸른 싹이 사지에서 금시 돋을 법도 하구나
오월이 돌아오면
제발 식물성으로 변질을 하여라
아무리 그늘이 음산하여도
모가지서부터 푸른 싹은 밝은 방향으로 햇볕을 찾으리라
오월이 돌아오면
혈맥은 그대로 푸른 엽맥(葉脈)이 되어라
심장에는 흥건한 엽록소(葉綠素)를 지니고
하늘을 우러러 한 그루 푸른 나무로 하고 살자
(신석정·시인, 1907-1974, 1939년 작품)
5월
저, 귀여운 햇살 보세요
애교떠는 강아지처럼
나뭇잎 핥고있네요
저, 엉뚱한 햇살 보세요
신명난 개구쟁이처럼
강물에서 미끄럼 타고있네요
저, 능청스런 햇살 보세요
토닥이며 잠재우는 엄마처럼
아이에게 자장가 불러주네요
저, 사랑스런 햇살 보세요
속살거리는 내 친구처럼
내 가슴에 불지르네요
(김태인·시인, 1962-)
5월
나와 봐
어서 나와 봐
찔레꽃에 볼 부벼대는 햇살 좀 봐
햇볕 속에는
맑은 목청으로 노래하려고
멧새들도 부리를 씻어
들어 봐
청보리밭에서 노는 어린 바람 소리
한번 들어 봐
우리를 부르는 것만 같애
자꾸만 부르는 것만 같애
(김상현·시인)
五月
5월의 나무들 날 보고
멀리서부터 우쭐대며 다가온다
언덕 위 키 큰 소나무 몇 그루
흰구름 한두 오락씩 목에 걸은 채
신나게 신나게 달려온다
학들은 하늘 높이 구름 위를 날고
햇살은 강물 위에 금가루를 뿌리고
땅 위에 가득 찬 5월은 내 것
부귀도 仙鄕도 부럽지 않으이.
(김동리·소설가, 1913-1995)
5월의 노래
언제부터 창 앞에 새가 와서
노래하고 있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심산 숲내를 풍기며
5월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저 산의 꽃이 바람에 지고 있는 것을
나는 모르고
꽃잎 진 빈 가지에 사랑이 지는 것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오늘 날고 있는 제비가
작년의 그놈일까?
저 언덕에 작은 무덤은
누구의 무덤일까?
5월은 4월보다
정다운 달
병풍에 그려 있던 난초가
꽃피는 달
미루나무 잎이 바람에 흔들리듯
그렇게 사람을 사랑하고 싶은 달
5월이다.
(황금찬·시인, 1918-)
오월 찬가
연둣빛 물감을 타서 찍었더니
한들한들 숲이 춤춘다.
아침안개 햇살 동무하고
산허리에 내려앉으며 하는 말
오월처럼만 싱그러워라
오월처럼만 사랑스러워라
오월처럼만 숭고해져라
오월 숲은 푸르른 벨벳 치맛자락
엄마 얼굴인 냥 마구마구 부비고 싶다.
오월 숲은 움찬 몸짓으로 부르는 사랑의 찬가
너 없으면 안 된다고
너 아니면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라고
네가 있어 내가 산다.
오월 숲에 물빛 미소가 내린다.
소곤소곤 속삭이듯
날마다 태어나는 신록의 다정한 몸짓
살아있다는 것은 아직도 사랑할
일이 남아 있다는 것
오월처럼만
풋풋한 사랑으로 마주하며 살고 싶다.
(오순화·시인)
5월의 시
풀잎은 풀잎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초록의 서정시를 쓰는 5월
하늘이 잘 보이는 숲으로 가서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게 하십시요
피곤하고 산문적인 일상의 짐을 벗고
당신의 샘가에서 눈을 씩세 하십시요
물오른 수목처럼 싱싱한 사랑을
우리네 가슴속에 퍼올리게 하십시요
말을 아낀 지혜속에 접어둔 기도가
한송이 장미로 피어나는 5월
호수에 잠긴 달처럼 고요히 앉아
불신했던 날들을 뉘우치게 하십시요
은총을 향해 깨어있는 지고한 믿음과
어머니의 생애처럼 겸허한 기도가
우리네 가슴속에 물흐르게 하십시요
구김살없는햇빛이 아낌없는 축복을
쏟아내는 5월
어머니, 우리가 빛을 보게 하십시요
詩 이해인
장미의 기도
피게 하소서 주여
당신이 주신 땅에
가시덤불 헤치며
피흘리는 당신을
닮게 하소서
태양과 바람
흙과 빗줄기에
고마움 새롭히며
피어나게 하소서
내 뾰족한 가시들이
남에게 큰 아픔 되지
않게 하시며
나를 위한 고뇌 속에
성숙하는 기쁨을
알게 하소서
주여
당신 한 분 믿고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당신만을 위해
마음 가다듬는 슬기를
깨우치게 하소서
진정 살아 있는 동안은
피흘리게 하소서
죽어서 다시 피는
목숨이게 하소서
- 이해인 수녀 -
5월의 다짐
초록 이파리들의
저 싱그러운
빛
이 맘속
가득 채워
회색 빛
우울(憂鬱)
말끔히 지우리.
살아 있음은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는 것
살아 있음은
생명을 꽃피우기
위함이라는 것
살아 있는
날 동안에는
삶의 기쁨을
노래해야 한다는 것.
초록 이파리들이
전하는
이 희망의
메시지
귀담아 듣고
가슴 깊이
새기리.
(정연복·시인, 1957-)
오월의 신록
오월의 신록은
너무 신선하다.
녹색은 눈에도
좋고
상쾌하다.
젊은 날이
새롭다
육십 두
살 된 나는
그래도 신록이
좋다.
가슴에 활기를
주기 때문이다.
나는 늙었지만
신록은 청춘이다.
청춘의 특권을
마음껏 발휘하라.
(천상병·시인, 1930-1993)
오월
장미꽃 봉오리
그 봉오리에
해님은 쉼
없이
햇살을 부어넣고
있다
하루
이틀
햇살의 무게에
못 이겨
장미꽃 활짝
벌어졌다
장미꽃 속에서
차르르
차르르
쏟아져 내리는
빛구슬, 구슬
(하청호·시인, 1943-))
오월의 노래
창을 타고
흐르는
오월에 내리는
비는
슬픈 가슴
물들이는
선연한 철쭉빛
비
속눈썹에
재잘대는
오월의 햇살은
슬픈 가슴
두드리는
환한
보랏빛 햇살
(신진호·시인)
5월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부신 초록으로
두 눈 머는데
진한 향기로
숨막히는데
마약처럼
황홀하게 타오르는
육신을 붙들고
나는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아아, 살아있는 것도 죄스러운
푸르디푸른
이 봄날,
그리움에
지친 장미는
끝내 가시를
품었습니다.
먼 하늘가에
서서 당신은
자꾸만 손짓을
하고……
(오세영·시인, 1942-)
오월의 그늘
그늘,
밝음을 너는
이렇게도 말하는구나
나도 기쁠
때는 눈물에 젖는다.
그늘,
밝음에 너는
옷을 입혔구나
우리도 일일이
형상을 들어
때로는 진리를
이야기한다.
이 밝음, 이 빛은
채울 대로
가득히 채우고도 오히려
남음이 있구나
그늘―너에게서……
내 아버지의
집
풍성한 대지의
원탁마다
그늘,
오월의 새
술들 가득 부어라!
이팝나무―네
이름 아래
나의 고단한
꿈을 한때나마 쉬어 가리니……
(김현승·시인, 1913-1975)
푸른 5월
청자빛 하늘이
육모정 탑
위에 그린 듯이 곱고,
연못 창포
잎에
여인네 맵시
위에
감미로운
첫여름이 흐른다.
라일락 숲에
내 젊은
꿈이 나비처럼 앉는 정오
계절의 여왕 5월의 푸른 여신(女神) 앞에
내가 웬일로
무색하고 외롭구나.
밀물처럼
가슴속으로 몰려드는 향수(鄕愁)를
어찌하는
수 없어
눈은 먼데
하늘을 본다.
긴 담을
끼고 외딴 길을 걸으며 걸으며
생각이 무지개처럼
핀다.
풀 냄새가
물큰
향수(香水)보다 좋게 내 코를 스친다.
청머루 순이
뻗어 나오던 길섶
어디에선가
한나절 꿩이 울고
나는
활나물, 호납나물, 젓가락나물, 참나물을
찾던
잃어버린
날이 그립지 아니한가, 나의 사람아.
아름다운
노래라도 부르자
서러운 노래를
부르자.
보리밭 푸른
물결을 헤치며
종달새 모양
내 마음은
하늘 높이
솟는다.
5월의 창공이여!
나의 태양이여 !
(노천명·시인, 1912-1957)
5월
시들 때를
미리 슬퍼한다면
장미는 피지
않았을 거예요
질 때를
미리 슬퍼한다면
나무는 초록을
달지 않았을 거구요
이별을 미리
슬퍼했다면
나는 당신을
만나지 않았겠지요
사랑이란
이렇게,
때로는 멀리서
바라보아야 하는 것
5월의 장미처럼 나는 그리운 이여
5월의 신록처럼 나는 그리운 이여
당신을 향해
다시 피어나겠어요
당신을 향해
다시 시작하겠어요
(홍수희·시인)
오월의 마술
작은 씨
하나
나는 뿌렸죠…
흙을 조금
씨가 자라게…
조그만 구멍
토닥토닥…
잘 자라라고
기도하면
그만이예요.
햇빛을 조금
소나기 조금
세월이 조금
그러고 나면은
꽃이 피지요
(M. 와츠·시인)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모든 꽃봉오리
벌어질 때
나의 마음속에서도
사랑의 꽃이
피었어라.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모든 새들
노래할 때
나의 불타는
마음을
사랑하는
이에게 고백했어라.
(하인리히 하이네·독일 시인, 1797-1856)
오월의 하루를 너와 함께
오월의 하루를
너와 함께 있고 싶다.
오로지 서로에게
사무친 채
향기로운
꽃 이파리들이 늘어선 불꽃 사이로
하얀 자스민
흐드러진 정자까지 거닐고 싶다.
그곳에서
오월의 꽃들을 바라보고 싶다.
그러면 마음속
온갖 소망들도 잠잠해지고
피어나는
오월의 꽃들 한가운데서 행복이 이루어지리라.
내가 원하는
그 커다란 행복이.
(라이너 마리아 릴케·체코 시인, 1875-1926)
오월의 노래
오오 찬란하다
자연의 빛
해는 빛나고
들은 웃는다
나뭇가지마다
꽃은 피어나고
떨기 속에서는
새의 지저귐
넘쳐 터지는
가슴의 기쁨
대지여 태양이여
행복이여
환희여
사랑이여
사랑이여
저 산과
산에 걸린
아침 구름과
같은
금빛 아름다움
그 기막힌
은혜는
신선한 들에
꽃 위에
넘친다.
한가로운
땅에
소녀여 소녀여
나는 너를
사랑한다
오오 반짝이는
네 눈
나는 너를
사랑한다
종달새가
노래와 산들바람을
사랑하고
아침의 꽃이
공기의 향기를
사랑하듯이
뜨거운 피
설레며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너는 내게
청춘과
기쁨과 용기를
부어라
새로운 노래와
댄스로 나를
몰고 간다
그대여 영원히
행복하여라
나를 향한
사랑과 더불어
(괴테·독일 시인, 1749-1832)
오월이 오면
오월이 오면
나뭇가지마다
눈을 트니
누가 근심스레
집안에 머물겠는가!
흰 구름이
하늘 궁창에서 마음껏 떠도니
나도 드넓은
세계로 떠나고 싶구나.
아버지여, 어머니여!
신이 당신들을
지켜주시기를 빕니다!
누가 알겠는가?
머나먼 땅에서도
나의 행운이 내게 미소를 보낼지.
그곳에는
내가 한번도
걸어보지 못한 길도 많고,
내가 한번도
마셔보지 못한 포도주도 많으리니.
땅거미가
지면,
시골마을의
작은 주점에 들르리라:
"주인장, 흰 포도주 한 병을 가져다주오!
그대 흥겨운
악사여, 바이올린을 켜다오!
나 또한
가장 소중한 노래를 부르리니."
오, 방랑이여!
오, 방랑이여!
그대 자유로운
젊음의 혈기여!
신의 숨결이
가슴속으로 싱그럽게 파고드는구나.
심장의 고동이
하늘 궁창에 이르도록
큰 소리로
외치며 갈채를 보내노라.
그대 드넓은
세계여,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엠마누엘 가이벨·독일 시인, 1815-1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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