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시 모음
12월 달력을 바라보며
한 해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11월 달력을 넘겼다.
그러고 보니 달랑 남은 한 장의 달력
무슨 일을 어떻게 하며 한해를 보냈던가?
돌아보니 뽀오얗게 내리는 눈발에
하얗게 덮어버린 들판처럼
모두가 파묻쳐 아무 색갈 찾을 길 없다
기쁘고 즐거워 가슴이 따뜻해 졌던 붉은 색갈 있었고
외롭고 허전함에 파아랗게 질닌 형광색 있었으며
때로는 저무는 인생에서 낭만을 음미하여
포근함과 행복을 주는 황희의 황금빛도 있었으련만
이제 돌아보니 모두가 한가지 색이었음은...
아무리 헤쳐보려 해도
모두가 하아얗게 덮혀 버린 들판 처럼
뽀오얗게 묻쳐 버린 지난날은
무지개 색 어느 것도 찾을 수 없는 채
아련한 추억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인자
12월에 꿈꾸는 사랑
12월엔 그대와 나
따뜻한 마음의 꽃씨 한 알
고이고이 심어두기로 해요
찬바람 언 대지
하얀 눈 꽃송이 피어날 때
우리도 아름다운 꽃 한 송이
온 세상 하얗게 피우기로 해요
이해의 꽃도 좋고요
용서의 꽃도 좋겠지요
그늘진 외딴 곳
가난에 힘겨운 이웃을 위해
베풂의 꽃도 좋고요
나눔의 꽃도 좋겠지요
한 알의 꽃씨가
천 송이의 꽃을 피울 때
우리 사는 이 땅은
웃음꽃 만발하는 행복의 꽃동산
생각이 기도가 되고
기도가 사랑이 될 때
사람이 곧 빛이요 희망이지요
홀로 소유하는 부는 외롭고
함께 나누는 부는 의로울 터
말만 무성한 그런 사랑말고
진실로 행하는 온정의 손길로
12월엔 그대와 나
예쁜 사랑의 꽃씨 한 알
가슴마다 심어두기로 해요
이채
12월의 노래
하얀 배추 속같이
깨끗한 내음의 12월에
우리는 월동 준비를 해요
단 한마디의 진실을 말하기 위하여
헛말을 많이 했던
빈말을 많이 했던
우리의 지난날을 잊어버려요
때로는 마늘이 되고
때로는 파가 되고
때로는 생강이 되는
사랑의 양념
부서지지 않고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음을
다시 기억해요
함께 있을 날도
얼마 남지 않은 우리들의 시간
땅 속에 묻힌 김장독처럼
자신을 통째로 묻고 서서
하늘을 보아야 해요
얼마쯤의 고독한 거리는
항상 지켜야 해요
한겨울 추위 속에
제 맛이 드는 김치처럼
우리의 사랑도 제 맛이 들게
참고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해요.
이해인
열두 달의 친구
1월에는
가장 깨끗한 마음과 새로운 각오로
서로를 감싸 줄 수 있는
따뜻한 친구이고 싶고
2월에는
조금씩 성숙해지는 우정을 맛 볼 수 있는
성숙한 친구이고 싶고
3월에는
평화스런 하늘 빛과 같은
거짓없는 속삭임을 나눌 수 있는
솔직한 친구이고 싶고
4월에는
흔들림 없이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으로 대할 수 있는
변함없는 친구이고 싶고
5월에는
싱그러움과 약동하는 봄의 기운을
우리 서로에게만 전할 수 있는
욕심많은 친구이고 싶고
6월에는
전보다 부지런한 사랑을 전할 수 있는
한결같은 친구이고 싶고
7월에는
즐거운 바닷가의 추억을
생각하며 마주칠 수 있는
즐거운 친구이고 싶고
8월에는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힘들어하는 그들에
웃는 얼굴로 차가운 물 한 잔 줄 수 있는
여유로운 친구이고 싶고
9월에는
떨어지는 낙엽을 밟으며
고독을 함께 나누는
분위기 있는 친구이고 싶고
10월에는
가을에 풍요로움에 감사 할 줄 알고
그 풍요로움을
우리 이외의 사람에게 나누어 줄줄 아는
마음마저 풍요로운 친구이고 싶고
11월에는
첫눈을 기다리며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기 위해
열중하는 낭만적인 친구이고 싶고
12월에는
지나온 즐거웠던 나날들을
얼굴 마주보며 되내일 수 있는
다정한 친구이고 싶다.
이해인
12월엔
그리움이 얼마나 짙어
바다는 저토록 잉잉대는지
바람은 또 얼마나 깊어
온몸으로 뒤척이는지 묻지 마라
차마 말하지 못하고
돌아선 이별처럼
사연들로 넘쳐나는 12월엔
죽도록 사랑하지 않아도 용서가 되고
어쩌다보니 사랑이더라는
낙서 같은 마음도 이해가 되는 12월엔
이희숙
12월
올 데까지 왔구나
막다른 골목
피곤한 사나이가 홀로 서 있다
훤칠한 키에 창백한 얼굴
이따금 무엇엔가 쫓기듯
시계를 자주 보는 사나이
외투깃을 세우며 서성거린다
꽁꽁 얼어붙은 천지엔
하얀 자막처럼 눈이 내리고
허둥지둥 막을 내린 드라마
올해도 나는 단역이었지
뼈빠지게 일하고 세금 잘 내는
뒤돌아보지 말자
더러는 잊고
더러는 여기까지 함께 온
사랑이며 증오는
이쯤에서 매듭을 짓자
새로운 출발을 위해
입김을 불며 얼룩을 닦듯
온갖 애증을 지우고 가자
이 춥고 긴 여백 위에
이만 총총 마침표 찍고.
임영조
12월
잊혀질 날들이
벌써 그립습니다
따뜻한 차 한 잔이
자꾸 생각납니다
상투적인 인사치레를
먼저 건네게 됩니다
암담한 터널을 지나야 할
우리 모두가
대견스러울 뿐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아이들을 꼭 품고 싶습니다
또 다른 12월입니다
임영준
12월 사랑
더 많이 아쉽고,
달랑 한 장 남은
12월 달력처럼 고독한 사랑입니다
하아얀 눈에
추억을 파묻고
아듀..
낮은 곳을 찾는 12월의 사랑입니다
구유에 오신 예수님
성탄 꽃을 가슴에 넣고
하늘 영광 땅에 평화를 전하는
신비를 담은 애틋한 그리움의 사랑입니다
12월 사랑은
긍휼을
듬뿍 온 누리에 보내는
복되고 행복한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입니다.
장성우
한 해가 저물어 가는 12월 달에
시작은 부실하고
허점 많이도 보였지만
점차 당신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었고
인간성에
정을 더 많이 느낀 게 사실입니다
내 능력이 되는 한
다 해주고 싶었던 마음이었고
내 전부를 걸고 사랑하는 것은
당신의
진실함과 믿음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때로 서운한 점은
당신이 내 마음을 몰라 줄 때이고
나의 실수가 보이면 덮어 주고
다정다감한 목소리로 불러주며
사랑하고 있다고 말해 주길 기대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배려 다 하며
당신의 여자로 사랑받고 싶고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내 모습이
오늘따라 너무 슬프고 아픕니다
사랑하는 당신
한 해가 저물어가는 12월 달에
한 통의 편지를 당신께 받고 싶습니다
전영애
12월의 일기
한 장 남은 달력, 12월이군요
어느덧 겨울이 온 모양입니다
길 풀섶 작은 풀꽃마저도
제 미소 잃고 꽃향기마저 사르니
늘 그래 왔던 것처럼
허공 하늘에 바람 소리
휑하니 쓸쓸하지만
여름내 흘린 땀방울이
바람 소리 그립게 하듯
겨울 여백도 아름답습니다
떠나보내야 함은
언제나 아쉬움이 가득하고
오고 가는 계절의 순환 앞에
또 새로운 무언의 희망이 열리니
처음처럼 새로이 태어나는 마음
온몸으로 솟구쳐 꿈을 펼쳐내는 태양처럼
내 삶의 이유가 아름답다면
올 한해도 나눔을 주신 고마운 분들께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전진옥
12월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다
뒷맛이 개운해야
참으로 맛있는 음식이다
뒤끝이 깨끗한 만남은
오래오래 좋은 추억으로 남는다.
두툼했던 달력의
마지막 한 장이 걸려 있는
지금 이 순간을
보석같이 소중히 아끼자
이미 흘러간 시간에
아무런 미련 두지 말고
올해의 깔끔한 마무리에
최선을 다하자.
시작이 반이듯이
끝도 반이다!
정연복
12월의 햇살 같은 시
가슴에 심은 기다림 하나가
눈이 오면 날개 짓을 합니다
가슴에 심은 그리움도
눈이 오는 날이면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소중한 님의 창가로 가서
살며시 창문을 엽니다
그리운 것들은 어디에 있든
늘 나와 동행합니다
눈꽃 내려앉은 설원의 아름다움은
한 장의 편지가 되어
뒤돌아보지 않겠다던 것을
꺼내어 펼치려 합니다
눈발이 날리면
더욱 순해지는 가슴들
그 그리움의 연서
한 번 받아보고 싶습니다
기다리다 지쳐
밤새 하얀 길 걸어갑니다
아직도 눈은 내리고
눈은 내리고
정연숙
행복한 12월
나는 12월입니다.
열 한달 뒤에서 머무르다가 앞으로 나오니
친구들은 다 떠나고
나만 홀로 남았네요.
돌아설 수도,
더 갈 곳도 없는 끝자락에서
나는 지금 많이 외롭고 쓸쓸합니다.
하지만 나를 위해 울지 마세요.
나는 지금
나의 외로움으로 희망을 만들고
나의 슬픔으로 기쁨을 만들며
나의 아픔으로
사랑과 평화를 만들고 있으니까요.
이제부터 나를
"행복한 12월"이라 불러 주세요
정용철
12월의 기도문
청마(靑馬)가 떠나고 있습니다.
올 한 해
고마워 감사할 줄 아는
마음 갖게 해 주소서
그 동안 쌓였던 적폐(積幣)로
좌절의 늪 벗어나게 해 주시고
회상의 무거운 짐 내려놓게 해 주소서
청마(靑馬)여!
당신이 머문 한 해 동안
그리 슬픔만 가득한 응어리
그 죄 떨칠 수 있게 해 주소서
청마(靑馬)여!
올 한 해는
희망의 손길을 배우고 익히지 못하고
전진을 미룬 어리석음 용서 해 주소서
청마(靑馬)여! 잘 가소서!
당신이 가신 뒷자리
순한 청양(靑羊)이 오는 첫 날부터
아름다운 꿈이 또렷이 새겨져 실현되는
새해 되게 해 주소서
정재삼
12월의 엽서
지구 한 점(點)의 구석에
지금
내가
12월의 엽서를 받아 들고 섰다
가을이 빠져나간
시린 그 자리에
빼곡 담겨있는 사연들 중
가슴 아픈 사연들이
가슴 속 저며 든다
따뜻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그리운 12월
올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누구나 한번 쯤
사랑의 손길을 내어 보라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정재삼
12월
저물어 가는 한 해
삶에 기준일까?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보내는 가슴 속 쓰린 이 후련한 이
모두 각각 다른 의미를 주겠지
비가 온다.
들판에 소 떼가 풀 뜻 는다.
어린이 멱 감으며 즐기고
먹구름 한 덩어리지나 가는 찰나
김매는 농부 농주 한잔 참 들고
서리 내린다
곳 불 든 잎 얼굴 붉히고
갈무리 바쁜 농부 하늘 볼 틈 없고
조각구름 뜬 파란 하늘 높기만 하네.
살살한 서리 바람 불어오네.
동동 걸음 쳐 아랫목 찾는 어린이
눈이 온다.
핫바지 저고리 갈아입고
겹바지 저고리 서답 너덜하고
때묻은 마음 서답 너덜하고
목도리 칭칭 감고 눈물 흘리며
재물 받쳐 서답 삼는 부엌
가마솥 군불 지피는 늙은이
강아지 어린이 눈 위에 뒹굴고
동 장군 온다.
아랫목 차지 누가 하나
까치, 까치설날 저기 오고
한 해 저물어 간다.
정창현
12월 송가
잿빛 하늘이 내려앉은 으스름한 들녘에
한 해의 끝자락이 차가운 바람 속에 휘날려
삶의 진액들이 저무는 강으로 흘러간다
생의 궤적은 흔들어대는 바람의 강도가
이즈음 더 커져서
소용돌이치는 형상의 물살 속으로
역사는 다시 한해를 끌어가고
강 건너 숲에서 날아온 작은 새도 결별을 고하는지
젖은 날개 파닥이며 쓸쓸히 떠나는데
아직도 떠날 수 없는 마음 자락 하나 허공에 걸려
진실의 갈구가 펄럭인다
삭막한 삶의 언저리로 순백의 눈꽃송이라도 쏟아지면
보내는 가슴이 덜 추울까
조용순
12월이란 참말로 잔인한 달이다
엘리어트란 시인은
4월이 잔인한 달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12월이 가장 잔인한 달이다
생각해보라
12월이 없으면
새해가 없지 않는가
1년을 마감하고
새해가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가 새 기분으로
맞이하는 것은
새해뿐이기 때문이다
천상병
12월 그대와 춤을
짧은 12월 햇살 뉘엿뉘엿 사라지고
빛바랜 잔영 밝히는
가로등이 애잔하다
어슴푸레 밤이 깊을 무렵
물안개 서릿발로
넋이 깃든 풀잎에 솜털처럼 달라붙어
영혼을 달랠 것이다
아니 함박눈 내려
온 세상 덮을 것이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감나무
바닷 속 산호초가 되고
장독대 쌓인 눈은
지혜로운 어머니 心志 될 것이다
개구쟁이 뛰어 놀기 좋은 논배미에
노루나 고라니 먹이 찾아 내려오고
의뜸의 하늘궁전으로 바뀔 것이다
냇가 덩굴을 찾은 참새무리
말초적인 자아도취에 빠질 것이다.
최명운
12월의 시
12월은 잿빛 하늘, 어두워지는 세계다
우리는 어두워지는 세계의 한 모퉁이에
우울하게 서 있다
이제 낙엽은 거리를 떠났고
나무들 사이로 서 있는 당신의 모습이 보인다
눈이 올 것 같다, 편지처럼
12월엔 적도로 가서 겨울을 잊고 싶네
아프리카 밀림 속에서 한 해가 가는 것을 잊고 싶네
아니면 당신의 추억 속에 파묻혀 잠들고 싶네
누군가가 12월을 조금이라도 연장해준다면
그와 함께 있고 싶네
그렇게 해서 이른 봄을 만나고 싶네, 다람쥐처럼
12월엔 전화 없이 찾아오는 친구가 다정하다
차가워지는 저녁 벽난로에 땔 장작을 두 고가는 친구
12월엔 그래서 우정의 달이 뜬다
털옷을 짜고 있는 당신의 손,
질주하는 세월의 삐걱거리는 소리,
바람소리, 그 후에 함박눈 내리는 포근함
선인장의 빨간 꽃이 피고 있다
시인의 방에는 장작불이 타고 있다
친구의 방에는 물이 끊고 있다
한국인의 겨울에는
최연홍
12월은
나에게
칭찬하는 사람 거리를 두고
항상
회초리든 사람을 가까이 하면
매사 형통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라
쓴맛 보다
단맛을 좋아하는 습성이 있어
더러는 마음에 상처를 남긴다.
쑤세 뭉치 같은 세상
가만 두어도
또 한해는 간다.
세월은 늘 그 자리에 있는데
사람이 이름지어
세월이 간다고 하니
나도 따라 갈 수밖에
하영순
12월은 사랑의 달
산과 들
골목골목 구석구석
찍어 놓은
발 도장이 얼마나 될까
감춰 놓은 자국마다
사색의 실타래를 풀어
씨줄 날 줄 엮어
베를 짜리라
고운 실 곱게 뽑아
비단 짜서 복주머니를 만들고
고운 마음 크게 뽑아
가마니를 짜고
그 안에 꼭꼭 사랑을 다져 담아
숨길 머무는 우리 사는 세상에
남김없이
날려 보리라
하얀 눈송이처럼
하영순
섣달 그믐이 가기 전에
섣달 그믐이 가기 전에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묵은 편지의 답장을 쓰고
빚진 이자까지 갚음을 해야 하리
아무리 돌아보아도 나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진 못하였으니
이른 아침 마당을 쓸 듯이
아픈 싸리비 자욱을 남겨야 하리
주름이 잡히는 세월의 이마
그 늙은 슬픔 위에
간호사의 소복 같은 흰눈은 내려라
섣달 그믐이 가기 전에
허영자
12월 닮은 한사람
이파리 하나 없는 빈가지에 걸터앉아
눈부시게 반작이는 저 흰 눈
찌든떼 끈적거리는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말끔 하게 차려 입었다고 골목으로
확성기 들고 인정해 달라고 외치는 군중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털면 먼지 나지 않는 의복이 어디 있으랴
그 자리 올라가면 북적대는 시야에
저절로 앉은 먼지
그래도 웃옷 벗어 자주 자주 털어보는
옥상위에 햇빛과 대화하는 어진 한 사람
지지하여 평화의 노래 부르고 싶은
12월 닮은 인도자 한분 횟불 들고 마중 가고싶다.
허정자
12월 1일
한 시대 지나간 계절은
모두 안개와 바람
한 발의 총성처럼 사라져간
생애의 다리 건너
지금은 일년 중 가장 어두운 저녁
추억과 북풍으로 빗장 찌르고
안으로 못을 박는 결별의 시간
이따금 하늘엔
성자의 유언 같은 눈발 날리고
늦은 날 눈발 속을
걸어와 후득후득 문 두드리는
두드리며 사시나무 가지 끝에 바람 윙윙 우는
서럽도록 아름다운
영혼 돌아오는 소리
홍윤숙
12월
12월의 저녁거리는
돌아가는 사람들을
더 빨리 집으로 돌아가게 하고
무릇 가계부는 가산 탕진이다
아내여, 12월이 오면
삶은 지하도에 엎드리고
내민 손처럼
불결하고, 가슴 아프고
신경질 나게 한다
희망은 유혹일 뿐
쇼윈도 앞 12월의 나무는
빚더미같이, 비듬같이
바겐세일품 위에 나뭇잎을 털고
청소부는 가로수 밑의 생을 하염없이 쓸고 있다
12월의 거리는 사람들을
빨리 집으로 들여보내고
힘센 차가 고장난 차의 멱살을 잡고
어디론가 끌고 간다
황지우
12월의 안부
전력을 다해 달리다가
잠시 쉬는 듯 뒤돌아보는데
세월은 그대로 흐르고 있네
부딪침과 느낌과 직감으로
존재와 행동을 되짚어 보노라면
스스로 깨트려
작아져야 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네
숱한 시간의 흐느낌
열두 굽이돌며 제 아픈 곳 닦아 줄
내일을 향해 가는 새 힘은
오직 새로운 길을 트는 일이라는
당부 한마디,
12월은
자기가 가진 최상의
선물을 건네주느라 골똘하네.
강민경
12월
씹던 바람을 벽에 붙여놓고
돌아서자 겨울이다
이른 눈이 내리자
취한 구름이 엉덩이를 내놓고 다녔다
잠들 때마다 아홉 가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날 버린 애인들을 하나씩 요리했다
그런 날이면 변기 위에서 오래 양치질을 했다
아침마다 가위로 잘라내도
상처 없이 머리카락은 바닥까지 자라나 있었다
휴일에는 검은 안경을 쓴 남자가 검은 우산을 쓰고 지나갔다
동네 영화관에서 잠들었다
지루한 눈물이 반성도 없이 자꾸만 태어났다
종종 지붕 위에서 길을 잃었다
텅 빈 테라스에서 달과 체스를 두었다
흑백이었다 무성영화였다
다시 눈이 내렸다
턴테이블 위에 걸어둔 무의식이 입 안에 독을 품고
벽장에서 뛰쳐나온 앨범이 칼을 들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숨죽이고 있던 어둠이 미끄러져내렸다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음악이
남극의 해처럼 게으르게 얼음을 녹이려 애썼다
달력을 떼어 죽은 숫자들을 말아 피웠다
뿌연 햇빛이 자욱하게 피어올랐지만
아무것도 녹진 않았다
강성은
12월의 단상
저기 벌거벗은 가지 끝에
삶에 지쳐
넋 나간 한 사람
걸려 있고
숭숭 털 빠진
까치가 걸터앉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참새는 조잘거리고
지나던 바람은
쯧쯧,
혀차며 흘겨보는데
추위에 떨던 고양이 한 마리
낡은 발톱으로 기지개 편다.
구경애
12월
대관령 계곡에는 눈보라가 몰아치고
나무숲은 저 혼자 깊어가고
나는 묵묵히 부는 바람 속에 갇히고
덜컹거리는 밤기차
멀리 인가들이 낮은 음으로 흔들리고
때묻지 않은 것이 두려웠네
내가 도달할 수 없는 깊이 속으로
가까이 다가가 얼굴을 묻고 싶네
곤두박질하는 흰 산맥들, 산맥들
아, 낭떠러지보다 내겐 왜
지상이 더 어지러운가
권현형
12월에 내리는 눈
이른 봄날
노랗게 핀 꽃망울 산수유꽃은
어디로 가고
빨갛게 익은
산수유 열매만 남았다
너의 눈물이 얼고 녹는 사이
말랑말랑 해진 너의 감성이
12월의 눈송이속에서 시들해진다
눈발은 벌떼처럼
허공을 펄펄 날아 떠돌더니
시든 풀잎에 내려 앉는다
이내 녹아 사라지고
너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12월의 눈이 내리는 날이면
남도의 끝 바다에 가서
그리웠던 심장을 꺼내
푸른 바다에 던져 버리고 싶다
산수유빛 노을이 번지고
검은 물새의 그림자을 따라
별이나 따러 가고 싶다
김사랑
12월의 시
마지막 잎새 같은 달력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네
일년동안 쌓인 고통은
빛으로 지워버리고
모두 다 끝이라 할 때
후회하고 포기하기보다는
희망이란 단어로
다시 일어났으면 좋겠네
그대 사랑했으면 좋겠네
그대 행복했으면 좋겠네
김사랑
12월의 연가
그대여, 사랑하시나요
그대여, 행복하시나요
그대여, 희망이있나요
차디찬 12월의 거리에
눈물나도록 아파할 때
그대를 위로 해줄 사람이 있나요
인생의 길목에서
홀로 고독하게 방황할b때
사랑의 불빛이 될 등대가 있나요
12월 함박눈이 내리면
지난날의 상처일랑
순결한 눈 속에 묻고 가요
새날이 시작되면
우리 손을 마주잡고
함께 그 길을 가요
김사랑
12월 마지막 날
겨울밤 익어 가는 굴다리
양 곱창집 천장에 머문 숨소리가 千斤이다.
녹아나리는 소주병의 주둥이에
重한 중력의 힘 솟구치는 풍경이
여기저기서 고단한 현실의 속내처럼
발끈하고 굴다리 밑 중 드리운 석양은
서운하게 저물어 간다.
12월 깊은 밤 그렇게 익어가고
무심히 잊으려 애쓰는 추억과 사연도
해 저물어 달빛 드리운 소주잔에 찰랑이며
진눈깨비 훑는 유리창엔
마지막 야윈 달이 되어 멎는다.
질퍽한 회색 도시의 푹한 거리처럼
아련한 빛의 피사체를 낳는
가로등이 머문 세월은 삶에 반비례하며
석쇠에 흔적을 남기는 곱처럼 우리네
얄궂은 일상이 기억되는 밤은 지워진다.
내일이면 다가올 壬辰年 새해를 드리울
흑룡의 잔등엔 고단과 현실을 털어 버릴
꿈과 희망 맑은 기운 품은 해님이길 기원하는
굴다리의 밤은 고요에 잠들고 있었다.
김윤구
12월의 연가
겨울이 온다 해도
나는 슬퍼하지 않으리
멀리서 밀려오는 찬바람이
꽃과 나무와 세상의 모오든 향기를 거두어 가도
그대여, 나는 오히려 가슴 뜨거워지리
더 멀리서 불어오는 12월 끝의 바람이
그 무성했던 그림자마저 거두어 가버릴지라도
사랑이여, 나는 끝끝내 가슴 뜨거워 설레이리
저 벌판의 논고랑에 고인 조그마한 물방울 속에서도
때로는 살얼음 밑에서도 숨쉬며 반짝이는 송사리떼들
그 송사리떼들의 반짝임 속이라도 내 마음을 부벼 넣으리
어쩌면 상수리나무 몇 그루처럼 산등성이에 머무는
우리 시대 그대여, 겨울의 그 끝은...
오히려 사랑의 처절한 불꽃으로 타오르리
지금은 두 손뿐인 그대여.
김준태
12월의 시
연초,
가슴에 품었던 소망이
모두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한 장 남은
올해의 달력을
새해 달력으로 바꾸어 달 때쯤엔
더도 덜도 말고
삼백예순날의 노력만큼
만면에 웃음 가득했으면 좋겠다
다섯 날의 부족한 부분은
판도라의 상자에서 나오지 못한 희망되어
내년을 기약하며
칠흑의 밤을 다리 끌며 걷던 미혹의 괴로움도
갈피 모를 길에서 방황하던 번뇌의 얽매임도
빗장 두르고 반목하던 혼돈의 마음도
별빛 불러모은 오늘의 창가에 편히 머물러
화해와 화합의 악수로
해탈의 어둑새벽을 열었으면 좋겠다
지나간 날들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맞이할 날들은 부푼 기대에
미지 그대로 열어 둔 채
희디흰 면사포 바래도
날마다 정성스레 가꾸어온 인고의 꽃
여일 새로 여무는 빛살에도 함초롬 지지 않도록
김춘천
12월은 숨겨놓은 애인이다
첫눈이 밥물처럼 넘치는 하늘에
푹푹 연기마저 불어넣는 지상의 굴뚝
바짝 마른 갈대가 세상의 아랫목을 데운다
12월은 대책 없이 뜨거운 계절이다
레이스 달린 애인의 속옷처럼
뜨거운 눈이 가슴에 내리고
나는 겨울 열대야에 잠을 버린다
낙엽을 안주머니에 숨기는 나무
속으로 속으로만 연둣빛 꿈을 꾸는
12월은 숨겨놓은 애인이다
김호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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