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투수 양현종, 황소고집이 만든 해피엔딩 : 완투승
양현종(36·KIA)은 지난 17일 광주 삼성전에서 조기강판의 충격을 겪었다. 9-5로 앞서던 5회초 2사후 주자를 1·2루에 보내자 KIA는 양현종을 좌완 김대유로 교체했다. 삼성의 왼손타자 김영웅 타석이었다. 전 타석에서 김영웅에게 안타를 허용했던 양현종은 자존심이 매우 상했다. 이닝을 마무리짓겠다고 얘기해봤으나 이범호 감독의 단호한 지시를 갖고 마운드에 올라온 정재훈 투수코치를 설득하지 못했다.
4점 차 앞서는데 승리투수 요건에 아웃카운트 하나를 남겨놓고 강판된 에이스의 충격은 꽤 컸다. 신뢰를 잃었나 하는 생각에 잠시 흥분했던 양현종은 웨이트장에 혼자 쳐박혀 생각에 빠졌고, 결국 ‘야구는 팀 스포츠’임을 스스로 깨달은 뒤 더그아웃으로 나와 동료들과 함께 경기를 마무리했다. 경기 뒤 이범호 감독은 “미안하다”, 양현종은 “제가 죄송하다” 사과를 서로 주거니받거니 하며 깨끗이 해소했다.
그리고 엿새가 지난 23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NC전에서 양현종은 완투승을 했다. 9이닝을 4피안타(1홈런) 무사사구 6탈삼진 1실점으로 혼자 막고 KIA의 8-1 승리를 책임졌다.
지난 5월1일 KT전에 이은 올시즌 두번째 완투승, 통산 15번째 완투이자 10번째 완투승이다. 올시즌 9이닝 완투를 한 투수는 양현종을 포함해 3명, 그 중 두 번이나 한 투수는 양현종뿐이다.
9회를 다 던졌는데도 투구 수가 95개밖에 되지 않았다. 8회까지 87개를 던지고 들어온 양현종 곁으로 역시나 투수코치가 향했다. 화요일인 이날 등판한 양현종은 일요일 키움전까지 주 2회를 던져야 한다. 나흘 쉬고 다시 던져야 하는 터라 체력 안배를 위해 교체하고자 했으나 양현종은 더 던지겠다고 했다.
어쩌면 지난 번과 비슷한 상황. 그러나 이번에는 이범호 감독이 양현종의 의견을 들어주었다. 주자를 출루시키면 교체하기로 하고 양현종은 9회초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그리고 삼자범퇴로 깨끗이 막아 직접 경기를 마무리지었다.
양현종은 이닝 욕심이 많다. 이닝 욕심의 발단은 오랜 시간 에이스로 뛰면서 생긴 책임감이다. 마무리 정해영이 아직 복귀하지 않아 최근 중간계투진이 힘들다. 투구 수가 충분히 여유있고, 던질 힘이 남아있다면 양현종은 늘 조금이라도 불펜 후배들이 쉴 수 있도록 더 던지려고 한다.
양현종은 지난 삼성전의 조기강판 사태 이후 “나를 이 상황에서 못 믿으시는구나 하는 생각에 충격이 컸고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그래서 흥분했었지만 한 번 더 생각하니 팀이 이기는데 내가 그런 행동을 한 게 후배들 보기 정말 부끄러웠다. 반성 많이 했다”고 했다. “그런 상황을 또 만들면 안 되겠지만 또 그렇게 된다면, 그때는 팀이 이기고 있다면 아무렇지 않게 내려올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베테랑 투수라 시즌 중 한 번쯤 휴식을 하라고 아무리 권해도 절대 안 쉬는 양현종의 ‘황소고집’은 올해 이범호 감독으로 인해 두 번 꺾였다. 전반기 막바지에 투구 중 팔꿈치에 살짝 불편함이 생겼던 양현종은 검진 결과 특별한 이상이 없다고 했지만 이범호 감독은 엔트리에서 제외했다. 당시 류현진(한화)과 17년 만의 선발 맞대결을 앞두고 있었던 양현종은 던질 수 있다고 고집을 피웠지만 이범호 감독의 단호한 지시에 결국 엔트리에서 빠져 휴식을 가졌다.
양현종은 모두가 기대하는 빅매치에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고 큰 경기를 무산시키고 싶지 않았지만, 사령탑 입장에서는 시즌 끝까지 던져야 하는 양현종이 처음으로 팔꿈치에 이상 신호를 보이자 무조건 쉬게 해야 한다고 결론내렸다. 그 결과 양현종은 정상 복귀했고 좋은 팔 상태로 던지고 있다. 이범호 감독은 “이제 휴식은 다 줬다. 후반기엔 없다”고 웃음지었다.
이범호 감독은 양현종이 스프링캠프까지만 해도 ‘범호 형’이라 부르던 선배다. 절친하고 신뢰 관계가 두텁다. 이범호 감독이 양현종을 너무 잘 안다. 양현종은 KIA 살림을 책임지는 기둥으로 뛰어온 지 오래다. 에이스로서 대우도 해줘야 하지만, 양현종을 위해 그 황소고집을 꺾어야 할 때가 있고 꺾을 사람은 감독뿐이라는 사실도 이범호 감독은 아주 잘 알고 있다.
양현종의 그 고집이 두번째로 꺾인 것이 바로 17일 삼성전의 조기강판이었다. 그리고 23일 NC전에서 다시 맞은 결단의 순간, 이번에는 이범호 감독이 양보했다. 양현종은 95개 중 74개를 스트라이크존 안에 넣는 완벽한 투구 끝에 완투승으로 화답, KIA의 7연승을 직접 완성하며 일주일 시작을 가뿐하게 만들었다.
이범호 감독은 이날 승리 뒤 “양현종이 올시즌 두 번째 완투로 불펜진에도 의미있는 휴식을 부여해줬다. 구위와 제구 모두 완벽한 경기였다. 리빙레전드 그 자체였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양현종 투수 인터뷰 ]
"앞선 경기는 내 기억에 잊었다. 오늘 경기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초반부터 타자들이 점수를 잘 뽑아주어 긴 이닝을 던질 수 있었다. 운이 많이 따랐다. 찬호가 잘 맞은 타구도 잘 잡아주었다. 외야수들도 잘했다. 완투는 나 혼자 할 수 있는게 아니다. 9회까지 던진다고 해서 힘든 것을 느끼지는 않는다"
"정재훈 투수 코치님에 일요일도 던져야 되기 때문에 그만하는게 좋겠다고 했다. 나는 8회도 던질 거라면 9회까지 던지겠다고 했다. 중간투수들에게 휴식을 더 주고 싶었다. 수석코치님과 코치님과 딜을 했는데 대신 주자 나가면 바꾸겠다고 했다. 감독님이 흔쾌히 허락해주셔서 9회 올라갔다"
"저번 경기때 좋지 않게 내려왔고 코치님도 길게 보지 마라고 한 이닝 한 이닝 잘라서 생각하라고 말씀하셨다. 상대가 공격적으로 나섰고 그렇게 5회까지 던지다보니 투수구도 적었다. 6회 타선이 점수가 나면서 완투에 욕심이 나겠구나 생각했다. 노히트노런과 퍼펙트는 1회 항상 실점이든 안타를 맞아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2017년은 베테랑 형들이 타선을 이끌었다면 올해는 어린 선수들이 워낙 잘하고 있고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오늘은 도영이가 너무나 좋은 기록을 세웠다. 워낙 잘했고 팀에게 도움이 많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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